조선 시대 도읍지인 한양에서 바라본 부산은 변방 중 변방이었다. 지리적으로 먼데다 수시로 왜구들이 들락거리는 지역이니 아무래도 소홀히 취급했을 것이다. 오랑캐들이 출몰하는 함경도 지역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부산의 정체성에 있어 유교 문화는 근대 문화유산에 비해 그리 높게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부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중앙 권력자들과 거리를 둔 옛 지역 지식인들의 저항성과 야성을 엿볼 수 있는 점이 많다. 이는 학풍으로 이어져 백성과 나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인물들을 배출하게 된다. 이들은 조정에서 일어난 부당한 일에 저항하거나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용기를 발휘한다. 동래향교는 이처럼 부산 유교 문화의 참모습을 찾아보는 체험 행사를 시작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한 인물과 그들의 유적을 찾는 여정에 나선 것이다.
윤공단·상현사·세덕사 등 돌며 임란 항거 군민·유림 절의 새겨 남명 조식 학풍 뿌리내린 곳 김해 신어산 아래 산해정도 찾아 남명 사상에 영향 받은 저항성 4·19혁명·부마항쟁으로 이어져
지금도 흐르는 부산 유교 정신 최근 진행된 체험 행사를 따라가 본다. 부산의 유교 문화 정신이 고답적이지 않고 우리에게 면면히 이어지고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금도 진행 중인 위안부 문제, 독도 분쟁, 교과서 문제 등을 임진왜란 첫 격전지였던 부산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바라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는 듯하다. 첫 일정으로 부산 동구 좌천동에 있는 정공단(鄭公壇)을 참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군과 일본군의 첫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충장공 정발 장군과 그를 따라 순절한 군민의 충절을 추모하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어 찾아간 곳은 부산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윤공단(尹公壇). 부산진성을 함락한 왜군은 다대진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다대첨사 윤흥신은 물러서지 않고 군관민을 이끌고 막강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윤공단은 바로 윤 첨사를 모신 석단이다. 높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 석단 앞에서 참배한 일행은 "다대포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동안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 다대동에는 이순신 장군 부관으로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 장군을 기리는 정운공순의비도 있다.
일행은 부산을 떠나 경남 김해 신어산 아래에 있는 산해정을 찾았다. 조선 시대 대학자 남명 조식이 젊은 시절 학문에 정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동래향교 측이 산해정을 찾은 건 남명의 학풍이 부산 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당시 동래의 주요 문중 사람들이 남명의 학맥을 이은 학자들에게 수학했다고 한다. 학문과 삶의 일치와 민본사상, 위민정치를 강조한 남명의 철학은 임진왜란 시절 수많은 의병장을 낳은 정신적인 토대가 됐다. 가족 단위로 체험단에 참가한 이들도 눈에 띈다. 부산 유교 문화를 새로 발견한 듯 서로 나누는 얘기가 활발하다.
조선통신사 역사관 방문.
절의를 지킨 부산의 유림 동래향교로 돌아온다. 버스 안에서 문화해설사가 다음 목적지의 의미를 설명한다. 동래향교는 조선 시대 공립 학교 격으로 각 지역의 유학 중심지였다. 동래읍성으로 들어간다.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역사에 조성된 임진왜란 역사관은 참여 일행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지하철 공사 중 동래읍성 해자가 발견됐다. 그곳에서 동래읍성 전투에서 희생된 많은 사람의 뼈, 다양한 무기, 생활용품들이 출토됐다. 임진왜란 전쟁터 중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나온 경우다. 그 당시 비극적인 모습이 역사관에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이곳을 지나 동래시장과 동헌을 지난다. 전형적인 조선 시대 읍성 구조다. 성안을 거니니 성 밖에서 공격하는 왜군들의 조총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하다. 북장대에 올라선다면, 저 멀리 부산진성에서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왜군들이 보이는 착시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진왜란 때 잘 알려지지 않은 부산 내 항쟁으로 소산 전투가 있다. 서울로 향하는 동래, 양산, 삼랑진 구간인 황산도에 있었던 소산역은 주요 요충지였다. 여기서 일본군을 막아 공을 세운 첨사 김정서 장군의 혼이 어린 금정구 선동 하정마을을 찾는다. 강릉 김씨 충순파의 사당인 상현사(금정구 상현로 105번길 91)에서 부산을 근거로 한 유림의 모습을 몸으로 느낀다.
대금 연주회 감상 모습. 강원태 선임기자 wkang@
일제강점기 수난 피한 사당들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세덕사는 여산 송씨의 사당이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때 동래로 은거한 이의 내력을 지닌 곳이다. 동래 최초로 과거 급제한 인물이 나온 집안이기도 하다. 동천단과 동천재(금정구 동대로)는 경주 김씨의 재실이다. 이 역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는 기개를 지녔던 집안이다. 임진왜란 때 목숨을 바쳐 왜군과 싸운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반송 삼절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남원 양씨 일문 세 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들 시설은 일제강점기 때 수난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창고라고 속여 겨우 화를 면하거나 해방 후 주민 중심으로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는 문화 해설사의 설명이다. 송인석 동래향교 유도회 총무국장은 "뿌리가 깊어야 흔들리지 않는다는 진리는 각 지역의 유학 전통에서 드러난다"며 "부산 유학의 깊이와 넓이가 얕지도 좁지도 않다는 사실을 시민에게 보여주는 게 이번 체험의 목적"고 밝혔다.
송 국장은 또 "부산 유학은 조선 초 퇴계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김해 산해정에 기거한 남명 조식 선생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에 임란과 같은 국가 위기에 온몸을 던져 왜군에 항거했고, 이러한 정신이 4·19와 부마항쟁 등 불의에 저항하는 기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래향교는 올해 내달 25~26일, 9월 7~8일, 10월 4~5일 후속 부산 유학 문화 체험 행사를 시행한다. 내년에는 체험 횟수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