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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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고장 東萊, 五鄕 그 절개를 찾아..."
동 래 향 교

동래(東萊)란 동쪽의 내산(萊山,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이라는 의미로 신라 경덕왕 16년에 동래군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대일외교에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규모와 역사에서 의미 깊은 고장이다. 1942년까지 지금의 부산 전역에서 기장군과 강서구를 제외한 지역을 관할한 부산의 옛 명칭이다. 동래향교는 국립지방교육기관 1392년(태조1)으로 국가의 교육진흥책에 따라 儒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며 지방민을 교육하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소실 되었다. 1605년(선조38) 동래부사 洪遵이 재건하였는데, 재건 당시에는 읍성(邑城) 동문(東門) 밖 지금의 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705(숙종31)년에 동래부 동쪽에 있던 관노산(官奴山) 아래로 이전하였다. 그 뒤 1785년(정조 9)에 내곡동(內谷洞)으로 이전하였으며, 1813년(순조13) 동래부사 洪秀晩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었다.

■ 프로그램 소개

임진왜란으로 동래성은 함락되었지만, 동래의 향반 세력들은 왜군이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목숨을 걸고 수차례에 걸쳐 의병활동을 하고 곽재우장군등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의병활동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나고 살아있는 의병들 중 청도김씨 김사위가 송의인(여산), 김정서(강릉), 김우정(광주), 박희근(죽산)등과 도의지교를 맺고 만력무술안을 주도하여 다섯 향반이 임란후의 어지럽던 동래를 재건하고 돌아가신 선열들의 재사와 서당을 만들어 후학을 가르쳤던 당시의 역사 현장을 회상하고 지역의 아름다움을 돌아본다.

■ 주요프로그램

동백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있는 육계도. 1999. 3. 9. 부산광역시의 기념물 제46호 해운대동백섬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9월 3일 해운대 동백섬으로 명칭이 변경. 섬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동백나무가 섬의 이름이 된 동백섬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바다 방향을 향해 서서 오른쪽을 볼 때, 백사장 끝에서 연결된 육계도. 원래는 섬이었는데 바로 옆으로 흐르는 춘천천의 영향으로 퇴적작용을 하여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지금도 옛날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동백섬 주위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서 그 길을 따라 바다와 숲이 만드는 절경과 함께 멀리 광안대교, 오륙도, 달맞이 고개 등을 보면서 동시에 섬 곳곳에 있는 최치원의 해운대석각, 황옥공주 전설이 깃든 인어상, 누리마루 APEC하우스 등도 볼 수 있다.



해운정(海雲亭)
동백섬은 신라 후기 최치원(崔致遠)이 해인사로 은거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동백섬 남쪽 바닷가의 바위에는 지금도 한자로 ‘海雲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이 직접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근거하여 동백섬에는 최치원 유적지가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1971년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이 건립될 때 동상의 가림막돌에 최치원의 약전과 한시 9편이 함께 새겨졌다. ‘고운최치원선생 해운대유적보존회’에서 ‘유학의 대문호인 동시에 천재 시인’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1961년 유적비 건립, 1971년 동상 건립, 1984년 해운정 건립.



누리마루
2005. 11. 18~19에 열린 제13차 APEC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부산광역시가 해운대구 동백섬에 세운 건축물. 전체 건물 구조는 한국 전통 건축인 정자를 현대식으로 표현하였고, 지붕은 동백섬의 능선을 형상화하였다. 정상회의 참가자들과 국내외 언론들에 의해 역대 APEC 정상회의장 가운데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정과정(鄭瓜亭)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고려 의종 때 정서(鄭敍)가 고려가요 정과정곡을 지은 곳. 정서는 고려시대 문인으로 본관은 동래, 호는 과정(瓜亭). 문장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과정잡서와 유배지에서 임금을 그리워하며 지은 鄭瓜亭曲이 있다. 원래의 지형은 아니지만, 지금 위치상 수영하수처리장에서 고려제강에 이르는 수영강변 지역일 것으로 짐작된다. 유적지 내에는 경암(鏡巖) 또는 용두곶이라고 불리는 바위, 한 그루의 보호수, 1984년 토향회에서 건립한 정과정시비(鄭瓜亭詩碑) 등이 있다. 정과정곡은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중 작자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따라서 정과정곡이 지어진 유적지도 역사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2003. 5. 2.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로 지정.



수영사적공원
조선시대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 1968년 수영공원 지정, 1995년 문화재 정비사업, 수영공원을 역사교육장과 시민휴식처, 관광지로 단장하여 수영사적 공원으로 개칭, 현재 城地관련 유적[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제8호, 좌수영성지]만 일부 남아 있는데 남쪽 입구에 수영성 남문[홍예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제17호 수영초에서 이전]이 있다. 남문에 들어서면 부산 좌수영성지 곰솔[천연기념물 제270호] 및 부산 좌수영성지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11호]가 있다. 숲의 남쪽 기슭에 경상좌도 절도사영 수사등의 공덕비군과 수강사(守疆祠, 안용복 장군 사당) 및 송씨 할매당·할배당과 장승이 자리하며, 북서쪽에는 수영민속 예술관이 있고, 공원의 서쪽에는 의용사와, 25의용단이 자리하고 있다.



義勇祠, 25의용단(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12호)
임진왜란 때 수영 지역에서 7년간 유격전으로 왜군에 항전한 25인의 의병을 모신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신 곳. 수영공원내 위치. 임진왜란이 일어난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이 왜적과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자, 수영성의 수군과 성의 주민 25명은 성문 밖의 선서바위에 모여 "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리라."하고 피로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왜적을 상대로 유격전을 전개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1609년(광해군1) 이와 같은 25인의 의용(義勇)이 지방민들의 청원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853년(철종4)에 건립되었다.



안용복 장군(守彊祠)
장군은 조선 숙종시대 경상좌도수군 절도사영의 수군으로 당시 왜인들이 우리의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를 자주 침범하자 수차례에 걸쳐 그들과 맞서 싸웠으며 동료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인시키고 일본의 에도막부로부터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 우리의 영토를 수호한 분이다. 수영사적공원내 안용복장군 사당과 동상, 충혼비가 있다.



수영민속예술관(水營民俗藝術館)
수영 지역에 전해오는 중요무형문화재를 보존·계승 및 전시하고자 1973. 10. 개관. 수영민속예술관은 예도원, 탈방, 민속자료실, 공연장 등으로 구성, 민속자료실에는 수영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와 중요무형문화재의 역사, 공연시연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도구 등 전시. 공연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3호 수영 야류, 중요무형문화재 제62호 좌수영 어방놀이, 부산시지정 무형문화재 제2호 수영 농청놀이 등 조상의 얼과 숨결을 보존·전승하는 수련장. 이곳 놀이마당에서는 매년 6월 전통민속예술축제에「수영지신밟기」,「동래학춤」,타락한 양반을 희롱하는 서민들의 놀음인「수영야류」, 「구례 잔수 농악」, 수영만의 멸치잡이에서 유래된 「좌수영 어방놀이」, 영남 교방청춤,「부산 농악」,「수영 농청놀이」, 한마당놀이 등 우리민족전통놀이들이 펼쳐진다.



신산서원(산해정)
조선시대 석학인 남명 曺植이 세워 30년 동안 후학을 가르친 곳으로 曺植은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통달하였고 인품이 뛰어나 여러 차례 벼슬길에 나올 것을 권유받았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그의 학행은 당세의 사표가 되어 이황과 더불어 이름을 떨쳤다. 1588년(선조21) 향인들의 청에 의해 김해부사 양사준이 서원으로 착공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다가 1609년(광해군1)에 안희, 허경윤 등의 힘으로 준공되어 新山書院으로 賜額됨. 임금이 이름을 내린 김해 유일의 사액서원. 1820년(순조20)에 송윤증 등이 중건하면서 산해정이라고 함. 1871년(고종 8) 서원철폐정책에 따라 철거하였다가 광복 후 중수하였다.



동래읍성
부산시 동래구 복천동·안락동 일대에 있는 고려 말 禑王 13년(1387)에 쌓은 읍성. 조선 초 왜구의 침입이 자주 있게 되자 성은 대대적으로 수축되었고, 영조7년(1731) 동래부사 鄭彦燮이 관찰사와 숙의하여 대대적으로 보다 큰 성을 쌓았다. 이때 둘레 17,291척, 여장 1,318개, 높이 17척으로, 성내에는 10개의 우물, 1개소의 못이 있었고 창고 守城倉을 두었다.



동래사적공원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사적 공원. 동래 사적공원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산 26-1번지 일원에 소재한 사적 공원으로 동래읍성, 동래성, 장영실 과학동산, 복천박물관, 동래읍성 역사관, 복천 문화회관을 모두 포함하는 지역이다.



하정마을
하정(河亭) 마을은 조선 시대에는 소산리라고 하였다. 소산리에 대한 명칭 유래는 소산(蘇山) 아래에 있다 하여 소산리라 하였다는 설과 소산 대사[범어사 승려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조그마한 집에 서기(瑞氣)가 돌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집에 들어서니 웅장한 소리를 내며 옥동자가 태어나, 산모에게 불가와 인연이 깊은 동자이니 잘 길러 주면 몇 년 후에 동자를 데려 가겠다고 청하였다. 그 후 불가와 인연을 맺은 동자는 입산수도하여 유명한 스님이 되었는데, 바로 소산 대사라고 하였다]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상현마을
부산시 금정구 선동에 있는 자연 마을로 유래는 없지만, 구전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이웃 마을에 거주한 賢人이 신선이 되었다고 하여 현리라 불렀으며, 현리 위에 있어 상현(上賢)이라 함. 마을의 형성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웃 하현마을이 삼국시대부터 거주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와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 200년 전 입향조 윤씨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다.『東萊府誌』[1740]에 의하면 본래 북면 선동에 속하였으며, 1858년(철종 9) 尹庭奎의 준호구에서 처음 상현리란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賢洞으로 나타나며, 『신구대조 조선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1917]에서 上賢洞 지명 확인.



오륜대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동에 있는 五倫臺는 저수지 안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지칭하나, 넓은 의미에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선두구동·오륜동·금사동·부곡동 등 5개동에 걸쳐 위치한 뛰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오륜대 저수지 일대를 의미하기도 한다.명칭의 유래는『東萊府誌』(1740) 고적조에 “오륜대는 동래부의 동쪽 20리의 사천(絲川)이 있었는데, 臺에서 4~5보 가량 계천에 임하고 암석이 기이하여 구경할 만하다. 또한 옛날 오륜대를 삼강오륜을 갖춘 다섯 명의 노인이 풍경을 돌아보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한다.



東臺마을 東川壇 世德祠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에 있던 이름난 절경지로 『동래부지』에서 東臺가 “府의 동쪽에 있다”라는데서 생긴 이름으로 추정됨. 신라 때부터 이름난 절경으로 東臺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은 윤훤이 동래 부사로 재직한 때가 1605년(선조38)이므로 17세기 이전부터 마을 형성 추증됨. 東臺橋를 지나 오른쪽으로 동대 마을 어귀 용머리같이 생긴 동산바위가 동대였으나, 옛날의 절경 터는 개발로 자취를 감추었고, 용머리 바위는 개발과 도로 확장 때 없애려 하였으나 주민들이 진정하여 남아 있다. 2001년 동대 마을 어귀에 표지석을 세워 부산 8대 명소의 하나라는 사실은 알려 주고 있다. 『동래부지』에 따르면 “동대는 沙川 변에 있었으며, 4~5丈, 15m 내외의 바위가 깎아지른 듯 서 있었다. 계곡의 물은 굽이쳐 돌아 수십 척의 맑고 깊은 못을 이루어 물고기가 많았으니 낚시하기 좋았다. 봄여름에 이곳에 오르면 가슴이 확 뚫리는 운치가 있을 정도로 멋진 조망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한다. 당시 동래부사를 역임한 윤훤과 이춘원[1571~1632]이 풍치가 뛰어난 동대의 아름다움에 대해 읊은 시가 『동래 부지』에 실려 있다.



忠烈祠(충렬사) 安樂書院(안락서원)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던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충렬사 내에 위치. 1605년(선조38) 동래부사 윤훤이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을 모시기 위하여 宋公祠를 세운 것이 시초.1624년(인조2)에 송공사를 충렬사라고 賜額하고, 부산첨사 충장공 정발을 함께 모심. 1652년(효종3) 동래부사 윤문거가 송상현의 학행과 충절을 높이고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하여 충렬사를 萊山 밑 안락리로 옮기고 강당과 동재, 서재를 지어 안락 서원이라 하였다. 1709년(숙종35) 동래부사 권이진이 추가로 死節한사람들을 충렬사 옛터에 별사를 세워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 유생 문덕겸, 비장 송봉수와 김희수, 겸인 신여로, 향리 송백, 부민 김상 등을 모심.1735년(영조11) 임란 때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을 다시 모시고 송상현 첩 금섬과 정발 첩 애향을 충렬사의 동문 밖에 별도로 閣을 지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였다. 안락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충신·열사들을 모셨기에 1864년 흥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를 단행하였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근년까지 그대로 내려왔으나 일제 강점기에 서원 교육과 함께 동래의 유림에 의해 매년 2월과 8월에 봉행되던 제향이 민족정기를 북돋운다고 하여 일본이 여러 가지 형태로 방해하여 서원과 祠宇를 보수하지 못하고 낡아지고 1977년 정부가 ‘호국의 요람지’로 확장 정화하면서 수백 년 이어 온 안락서원의 본래 모습은 오히려 흔적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안락서원은 충렬사로 변모하였다.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모든 선열의 위패는 직책 또는 증직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총 92위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다.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재)충렬사 안락서원에서, 매년 5월 25일에는 부산시에서 모두의 정성을 모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 일정표

장소 시간 단위 프로그램 성격 및 주제 프로그램 내용
1일 동래향교 08:30~09:20 교육: 향교소개와 고유례 향교탐방 및 배향인물 안내-전교님
09:20~10:00 체험: 부채 만들기, 시조창 강사 2명 함께하는 시조창
이 동 10:00~10:40    
신산서원 10:40~11:10 교육: 남명조식과 신산서원 남명 조식선생의 경이사상과 임진의병
11:10~12:00 체험: 선비춤 선비춤 체험
중 식 12:00~13:00 중식:김해 오리탕 대동 돌풍가든/오리탕
이 동 13:00~13:30    
상현마을 13:30~14:30 탐방: 상현사(오향 김정서) 동래의 오향 김정서 선생 업적 해설
이 동 14:30~15:00    
동대 선비마을 15:00~16:00 교육: 동래 오향인물 동래 오향 인물과 발자취
이 동 16:00~16:30    
복천박물관 16:30~18:00 교육: 복천 박물관 해설 산책과 힐링을 함께 하는 복천동 고분군 탐방
석 식 18:00~19:00 석식: 윤산정 '매기매운탕' 윤산정 '매기매운탕'
숙 박 19:00~ 오호텔 오호텔 숙박
2일 조 식 08:30~09:00 조식: 한정식 향교탐방 및 배향인물 안내-전교님
정과정 09:30~10:00 탐방:장과정곡 시조창의 원류 유일한 고려가요 중 작가 존재
수영사적 공원 10:00~11:00 탐방: 수영성 탐방 수영성,의용사,수강사 해설
향사례 11:00~11:40 체험: 향사례 수영 무예마을에서 향사례 체험
수영팔도 시장 11:40~12:20 체험: 수영팔도시장 수영팔도시장 체험,자유시간,특산물 구비
중 식 12:20~13:20 중식: 초가한우 초가한우/육회비빔밥,차돌된장
동백섬 해운정 13:20~15:20 탐방: 해운 최치운,누리마을 해운정 탐방과 힐링
충렬사 15:20~16:30 마무리 설문지,마무리 인사
해 산 17:30 해산  


* 주 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 전 화 : 051-552-4160